2021년, 한 해는 중드보다는 한드를 더 사랑했다. 중드 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볼만한 한드가 더 많이 나왔다는 뜻이겠지.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편의 드라마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옷소매 붉은 끝동'이다.
시작전부터 기대감이 상당했고, 보자마자 우리 세손 저하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호감에도 없던 덕임이까지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 다했지. 덕임이와 산이 저하의 사랑을 응원했고 두 사람이 없음 안될 '옷소매 붉은 끝동'에 무한 빠져들었다. 드라마를 사랑하기 시작하니, 주변 인물에도 관심이 생겼고 매회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 잡는 주변인물을 앓는 것도 당연했다.
참, 재미있게 시청하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시상식에서 대상을 기대하기도 했고 베스트 커플상을 염원하기도 했다. 그런 드라마는 참으로 오랜만이었기에 마지막회가 방영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원래 드라마 마지막회까지 챙겨 보지 않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런 나의 원칙을 깨트릴 만큼 참 좋았던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까지 완벽해서 끝까지 챙겨본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끝난 지금까지도 꽤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를 앓고 있는 이유, 그건 바로 이준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하의 곤룡포 '우리집'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았고, 드라마가 끝난지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출연진의 라스 출연 소식이 화제인 것만 봐도 말 다했지.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 보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준호의 출연만으로도 나는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볼 이유가 충분했다. 믿고 보는 배우에 올라와 있는 이준호였기에, 나는 이 드라마를 꼭 봐야만 했다.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면 어쩐 일인지 믿고 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한 번도 이준호가 이런 믿음에 배신한 적이 없다. 그러니 믿보배지.
내가 배우 이준호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감정 연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평범하다. 평범하게 스며드는 그만의 감정 연기가 나는 평범하지 않아 좋다. 인물의 캐릭터를 확실히 살리면서도 특별하지 않게 보통의 인물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시청자에게 온전히 다가가게 하는 힘. 그건 배우 이준호만이 가진 힘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감정선이 캐릭터와 맞닿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더 없이 행복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드라마에 빠져들었고 캐릭터를 사랑했고 배우 이준호를 칭찬했다. 그렇게 배우로서 이준호가 자리잡았고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을 빼놓지 않고 챙겨보게 되었다. 참 좋은 일 아닌가.
'옷소매 붉은 끝동'도 그랬다. 내게 정조는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 대왕을 연기한 이서진뿐이었다. 우리 세대에게 왕건이 최수종이고 장희빈이 김혜수고, 명성황후가 이미연인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게 정조는 여전히 이서진이지만, 이산은 이서진이 아닌 이준호가 되어버렸다. 그간 배워온, 알아온 정조 그리고 이산이라는 인물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 배우 이준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감사합니다!!!
이산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드라마 '이산' 때문이었지만 여전히 정조=이산, 이 공식이 바로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금은 물론 다르지만. 지금은 이산이 곧 정조임을 나는 잘 알고 있고 생각할 틈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이산에 빠져 있으니까.
역사 시간에 배운,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배운 이산=정조의 이야기는 영조 할아버지와 사도세자 아버지를 둔 왕.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헤쳐 나가야 할 산이 많았음에도 좋은 왕으로 성장해 백성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많이 편 왕이라는 것.
이 엄청난 일을 겪으면 어떨까. 한 사람으로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마음일까. 감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면서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아버지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바람. 그 바람에 옳은 길만 가려 했던 산이. 때로는 할아버지에게 오해를 사고, 그 오해로 받지 않아도 될 벌을 받아야 할 때. 억울함에도 억울하다 말하지 못하는 산이의 마음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찌 참을꼬. 어찌 참아 왔을꼬.
그 마음을, 산이의 아픔을 덕임(이세영)이 어루마져줬고. 그런 장면이 '옷소매 붉은 끝동'에 등장할 때마다 나는 다시금 그 시대로 돌아가곤 했다. 내가 알지 못한 역사, 그 역사를 살아온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 시청이 즐겨웠다. 배움이 있었으니까.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검색했던 단어. 그리고 제일 많이 검색했던 단어가 바로 '성덕임'이다.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마지막 사랑.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 그 사랑 이야기가 좋았다. 왕도 사랑을 하는 구나. 그간 알고 있던 왕의 사랑, 궁의 이야기는 치정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이런 순애보를 가진 왕도 있구나 싶어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를 찾아보니, 놀라운 것 투성이었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펼쳐지는 이산(이준호)과 덕임(이세영)의 사랑 이야기는 참, 알콩달콩했고 티키타카 넘쳐나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산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생각시와 티격태격하다가 어느새 내 사람이 되어버린 덕임을, 내 곁에 두고 싶다 여기면서 여인으로 그를 대하는 이산의 모습까지. 어찌 놓칠 수 있을까. 놓치면 안될 포인트인데.
손에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었던, 사랑. 그 사랑을 지키고 싶었던 산이의 마음을 '옷소매 붉은 끝동'은 너무나도 잘 그려냈기에, 시청자인 우리는 정말인지 이 드라마에 미친듯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잊지 못한다고. 보낼 수 없다고. 시즌2 제작해 달라고.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하시나요(???)
중전 김씨(장희진)가 덕임을 자신의 곁에 두려 했을 때, 화빈이 덕임을 괴롭히고 모함하고 위험에 빠지게 할 때. 덕임을 지키기 위해 덕임이 가장 무서워하는 벌을, 그렇게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산이의 마음. 그럼에도 산이 곁에 남기로 결심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 덕임이. 그 선택이 영원한 행복이 되길 바랐는데. 그날의 선택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을, 산이와 덕임이는 알지 못했던 거지.
처음 '옷소매 붉은 끝동' 캐스팅 라인을 봤을 때, 믿고보는 이준호여서 이산 역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다만 상대 배우 이름을 보고 나는 잠시 멈칫해야 했다. 멈칫하고 또 멈칫하다 결국에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이산'에서 덕임 역은 한지민이 소화했기에, 그와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를 기대했는데 이세영이라고 ?? ← 뭐 이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이 끝난 지금에는 다르다. 나는 본투비 중전상이라는 그 말을 믿었고, 너무나도 성덕임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세영에 반해버렸다. 아, 이세영의 연기력은 하루 이틀만에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그렇기 이렇게 탄타한 연기력으로 성덕임의 서사를 쌓아 올린 거구나 싶어서 미친듯이 감탄했다. 진짜 '옷소매 붉은 끝동'의 매력은 이준호와 이세영의 케미고 두 배우의 연기가 아닐까.
덕임을 연기한 이세영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덕임이까지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된 것에는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니까. 나는 이세영의 연기력에 감탄했고, 왜 사극퀸이라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 뭐랄까. 진짜 이세영=중전상 아니냐고. 누가봐도 중전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잖아요. 진짜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기 전과 후의 반응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
어린 생각시에게 사랑은 저 먼 나라의 일과 같았다. 궁에서의 생활은 남녀의 사랑을 알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손저하 품에 안긴 날, 그는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몸을 가진 이 사람이, 이 분이 '남자'라는 것을. 남자를 알게 된 어린 생각시는 그렇게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연모합니다". 그 말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덕임(이세영)은 다른 이에게 이 마음을 들켜도 상관 없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그 사실을 모르게 하고 싶었다. 바로 세손저하, 이산(이준호)이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작은 허세였지만 평생 지켜야할 비밀이었고 마음이었던 것을 우리 세손 저하는 알지 못했지만.
영특했던 덕임(이세영)은 자신의 마음을 진즉에 알았고, 이산(이준호)의 마음도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귤을 핑계로 마음을 전하는 세손저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대신, 후궁이 되지 않겠노라 다짐만을 더욱 견고히 했다. 생채기를 내버렸다.
후궁이 되어달라는 저하의 말에, 후궁이 되면 자신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던 덕임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후궁이 아닌 '가족'이 되어달라는 말에 마음을 열었지만 여전히 한 남자의 유일한 여자가 아닌 왕의 여러 후궁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결국에는 후궁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이산인지를...우리 저하는 알아야 했는데.
'옷소매 붉은 끝동' 산이(이준호)는 덕임을 지키기 위해, 중전으로부터 덕임을 보호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늘 밤 이 제안을 거절하면 다시는 자신과 만날 수 없을 거란 말을 건넬 뿐이었다. 덕임(이세영)은 생각했다. 아니, 결심했다. 덕임은 산이를 다시는 못본다면 살 수 없었다. 그런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후궁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승은을 입은 덕임의 삶은 달라졌다. 더는 궁녀가 아니었다. 상궁이 되었고, 더는 소일거리로 필사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산(이준호)이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를 떠는 것도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 끝난 뒤, 비하인드 스토리로 듣게 된 이야기 하나. 원래는 대본에 없던 장면이었는데 연출님의 제안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장면이었다고. 그러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그 장면. 나 역시도 이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이 순간이 있었기에 후궁이 된 덕임이, 왜 후궁이 되는 것을 그토록 걱정했는지 그리고 후궁이 된 후 덕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이 장면이 없없으면 어쩔뻔 했는지.
늘 함께였던 동무들. 그 동무들이 휴가차 궁 밖으로 나서는 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지난 날과 달리,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닫는 그 순간. 밝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어쩐지 그 밝은 미소조차 슬픈 눈물로 보이는 건 왜일까.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덕임이 누워 생각에 잠겼을 때,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덕임이 후궁이 되어 얻은 것은 연모하는 이=이산일 것이고, 잃은 것은 자신=성덕임의 삶이었다는 것을. 정말 영특한 연출이고 전개이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 순이 참으로 슬프게 다가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삶을, 성덕임의 이름으로 사는 그 삶을 그렇게 보낸 의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의빈성씨의 삶을 검색해봤다. 후궁을 두 번 거절했고, 후궁이 되고 난 뒤의 삶까지. 2번의 유산, 아들이 동궁이 되었지만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고, 딸을 낳았지만 오래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다시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생을 마감했던 의빈의 삶. 정조가 사랑했던 여인. 얼마나 아낌없이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이 이야기가 '옷소매 붉은 끝동'로 그려질 때 얼마나 아름답던지. 예쁘던지.
후궁이 되기 전까지는 티키타카가 좋았던 산이와 덕임이었는데, 덕임이의 삶이 사라진 순간 더는 행복한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나는 내가 찾아본 정보들이, 역사가 원망스러웠다. 1회 연장되어 방송된 마지막회. 어쩐지 결말은 덕임이의 죽음이 아닐까 싶어서 보는 내내 나는 울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 슬픔을 모두 꿈으로 그려냈다. 이산의 꿈.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이산의 다짐. 그리고 지금의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말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끝을 맺은 '옷소매 붉은 끝동'. 이 완벽한 결말이, 슬픈 세드 엔딩을 보여줬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 좋았던 마지막회. 아, 이제 무슨 낙으로 금요일 저녁을 맞이하나.
ⓒ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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