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전 리뷰를 살펴보다가, 마지막회를 시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리뷰를 남기지 않은 드라마가 몇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 리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회 정리 포스팅까지 다시 한 번 해볼까 하여 들고 온 게 바로 드라마 '마인' 리뷰다. 내가 처음 '마인' 리뷰를 쓴게 7회까지 보고 난 뒤였는데, 1회부터 빠짐없이 시청했지만 리뷰는 7회에 쓰고 쓰지 않았더라는.
미친듯이 보게 된 드라마. '마인'. 작가에 따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나는, 백미경 작가의 작품을 참 좋아한다. 그 특유의 감성이라고 해야 하나, 이야기 전개 방식이라고 해야하나, 그로 인해 내가 받아들이는 '메세지'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작가님의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시청하고 있다. '마인'은 '품위있는 그녀'와 느낌이 닿아 있었는데 그 안의 메세지는 확실히 달랐다.
배우 이보영이야 말해 무엇할까. 늘 같은 느낌의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생각했는데 '마인' 이후 그러한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것을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 그만큼 '마인'에서 서희수라는 인물은 좀 특이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이야기를 다룬 '마인'에서 서희수(이보영)은 재벌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효원가와 맞먹을 만큼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가 내세울 것이라곤 한때 잘나가던 연예인이었다는 것이 전부일 터. 사랑하는 남자 한지용(이현욱)을 만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효원가 며느리가 되어 살아왔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배 아파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아들 한하준(정현준)을 키웠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었다. 사람들은 한하준의 어머니로 서희수를 인정했고, 친모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만큼 진심이었고, 그에게 모성애는 넘치고도 넘쳤다.
그저 사랑이면 되었다.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이었으면 더는 바랄게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거짓'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거짓의 사랑이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 그렇다. 남편의 사랑은 거짓이었고, 자신이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그렇게 가정은 무너졌고 서희수(이보영)는 이전의 서희수가 아니었다.
평범하기에 더는 변할 것이 없어 보였던 서희수였지만, 진실이 아닌 거짓과 마주한 순간, 그는 변했다. 변했다라는 말보다는 '성장'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서희수(이보영)는 성장했고 효원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보다는 그 울타리를 넓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이야기가 좋았다. 도망치거나 포기하거나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마인'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꿍꿍이지?' 싶어서 의문스럽기만 했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체적으로 변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정서현(김서형)은 초반부터 주체적이었고,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
정서현(김서형)은 서희수(이보영)와 마찬가지로 효원가 며느리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집안은 효원가와 맞먹을 만큼 어마어마한 집안이라는 것이다. 정략결혼. 사랑 없이 결혼했다는 것도 서희수와는 다르다. 완전 다른 상황에서 효원가에 입성한 두 사람이 효원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 그게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나를 찾은 결과물이 '마인'이 아닐까.
정서현(김서형)은 효원가 며느리로, 자신의 자리만 지키면 되었다. 그래서 효원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으면서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다. 서희수(이보영)의 일에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그 사람과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고,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 알았지만 그것으로 흔들리지는 않았다.
서희수와 한지용(이현욱)의 관계를, 둘의 문제를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어느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서희수(이보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것도 정서현이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진심으로 서희수를 도왔다. 그 도움이 있었기에 서희수도, 정서현도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거겠지.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라는 것을.
'마인'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강자경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사실, 이런 인물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자경(옥자연)은 한지용(이현욱)과 사랑하던 사이였고, 둘 사이에는 한하준(정현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사랑했지만 헤어져야 했고, 죽은 사람이 되어 아들과 이별해야 했던 엄마.
아들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친모의 품이 필요하다 생각한 한지용은 강자경은 튜터로 효원가에 들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튜터로만 강자경을 대하던 서희수(이보영)는 자신보다 더 아들 한하준에게 집착하는 강자경을 보고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정체가 하준의 친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 모든 것이 한지용의 계획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서희수가 받은 충격은 유산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권선징악. 이 말에 따르면 강자경(옥자연)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인'은 강자경을 그렇게 다루지 않았다. 그에게도 변화의 기회를 준 것. 강자경은 여인으로 효원가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지용(이현욱)과의 재결합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바라는 것은 아들 하준이와의 만남이었고, 하준이만 건강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지용(이현욱)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준이와 강자경을 떼어놨다. 그 과정에서 강자경(옥자연)은 알게 되었다. 자신만큼, 아니 자신 못지 않게 하준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서희수라는 것을. 그의 진심을 알게된 강자경은, 유산의 아픔에 정신을 못차리는 서희수 곁을 지켰다.
그렇게 연대가 시작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찾아 나선 서희수와 정서현, 그리고 강자경은 손을 잡았고 이 연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하기만 한 효원가를 미친듯이 흔들어놨다.
국민 나쁜놈. 배우 이현욱을 나쁜놈으로 기억하게 만든 드라마. 그것이 바로 '마인'이다.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없는 신분이기에 형 한진호(박혁권) 뒤에서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감추고 살아왔다. 형보다 뛰어나지만 그 능력을 백분 발휘하지 않았다. 그렇게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쁜 얼굴을 드러내지 말았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것을. 그럼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 하지 않았을텐데.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마인'은 한지용의 죽음을 먼저 보여주고, 누가 왜 한지용을 죽였는지 추리하게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가, 왜 보다는 한지용은 왜 죽었는가에 집중했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지용은 왜 죽어야 했는가. 그의 죽음에는 여러 사람들의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진짜 이렇게 죽어마땅한(?)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그 사랑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만큼은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고,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러면 안되는데, 그랬으면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친모인 강자경(옥자연)을 튜터로 들이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그 선택이 서희수(이보영)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 지는 생각도 못하고.
효원가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인'을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한수혁(차학연)과 김유연(정이서)의 사랑을 보면서도 그랬고, 양순혜(박원숙)의 인생을 보면서도 그랬다. 한진희(김혜화)의 삶도 안쓰럽기도 했고 왜 저러나 싶기도 했고. 효원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검은 속내를 엿볼 때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인'에 등장한 인물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싶어질 만큼, 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그 모든 걸 진작에 적어내려가지 못한게 아쉽기만 하다. 몰아서 쓰려니 힘이 부족하네(..) 그래도 내게 많은 것을 보여준 드라마 '마인'의 마지막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
ⓒ tvN '마인' 캡처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