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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왕비 결말 : 인과응보라더니 아쉽 / 용제 라운희 부주 경초

G_Drama

by 초얌_ 2022. 1. 1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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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중국드라마 '백발왕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보는 내내, 다 보고 난 뒤에도 한결 같이 주인공보다는 용제(라운희)와 부주(경초) 서사에 더 관심이 갔던 이상했던 드라마. 내게 '백발왕비'는 그런 드라마였다.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의 서사가 더 애틋했고 안쓰러웠고 축약된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아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한 상상으로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지고, 그렇게 감정이입해 버리니 '백발왕비' 볼 때마다 이 인물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짓을 저질러도 다 용서되고, 그 모든 행동이 그저 짠하기만 해서 큰일이기도 했지만. 다 보고 난 지금에도 여전히 '백발왕비'하면 두 인물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용제 / 라운희



진짜, 나는 라운희라는 배우의 얼굴을 사랑한다. 사랑하다 못해 아낀다.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에서도 그 비주얼이 더 빛나서, ' 역시 라운희야'라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중인데 이때에도 마찬가지. 현대극에서도 라운희의 얼굴은 빛이 나는데 고장극에서도 빛이 나면 어쩌자는 건지. 라운희는 존재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

그런 라운희가 '백발왕비'에서 맡은 인물은 서계 황제인 용제다. 초반에는 용제의 이야기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서, 오해의 소지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 드라마가 긴 호흡으로 그려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다룰 수 없다보니 '백발왕비'에서 용제처럼 '왜 저러지?' 생각하게 하는 경우도 발생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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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백발왕비'에서 용제(라운희)는 누이동생 용락을 화친공주로 북림에 보낸 서계의 황제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용락 주변을 맴돌고, 어떤 때에는 용락을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위험에 빠트린 뒤에 그를 구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기도 햇다. 정말 의아했다. 왜 저러는가 싶어서.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슬픔'을 다가와서 아팠지만.

 

 


​용제의 사정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용제(라운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백발왕비' 50회에 이르러서부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감춰져 있던 용제와 용락의 비밀이 공개된다. 그전까지는 왜 저래, 싶었고 그런 의문이 들때마다 답답함이 가중되었는데.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백발왕비' 시청을 포기했더라면 내가 용제라는 인물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겠지. 다행이다. 나에게 이런 인내심이 있어서.

(*스포일러) 용락은 아이를 가졌지만 목숨을 위헙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 용락을 지키기 위해 용제(라운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제공자라는 이름으로 용락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둘의 모습은 흡사 신혼부부 같았고, 둘의 모습은 새로운 터전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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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용락은 용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닌데도 용락은 용제에게 더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만큼 많은 일들이 용락을 상처 입힌 것이겠지.

 


그렇다면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일단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부원은 어린 진만(*용락의 진짜 이름)을 서계로 데려오고 그를 냉궁에서 키운다. 용락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채 부원에 의해 거짓된 복수심을 키우고 그 복수심을 안고 살수로 키워진다.

우연히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만난 용제와 용락은, 서로를 의지하며 오누이로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오누이의 정을 나눈 두 사람이지만 부원이 있는 한 두 사람은 영원히 따뜻한 오누이의 정을 나누는 사이로 지낼 수 없었다. 용락은 부원의 아들이었기에.

 


기억의 파편



부원의 복수는 오랜시간 지속되었다. 그만큼 그의 상처가 컸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나는 그의 상처를 들여다볼 생각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의 복수심으로 상처 받은 이들이 더 많았기에. 그들의 상처가 더 크다는 걸 알기에. 부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원은 용락의 아이를 인질삼아 그의 복수를 차근차근 시행해 나갔다. 부원이 움직일수록 용락은 용제를 의심해야 했고, 용락과 용제의 관계는 더더욱 삐그덕 거렸다. 금이 갔고 갈라졌고 좁혀 질수도 없었으며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었다. 배신감은 컸고 그로인한 상처는 아물지도 않고 자꾸만 용락을 아프게 했다.

 


용락이 너무해 



사실 나는 '백발왕비'를 보면서 부원만큼 용락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보다 용제와 부주의 서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믿으면 모든 것을 다 걸고 그 사람을 지켜주는 사람, 그게 바로 용락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깨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가워지는 것 또한 용락이었다. 용락은 용제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누구보다 빠르게 차가워졌다.

나는 그 차가움이 싫었다. 다시 따뜻해질 수 없다는 게 싫었다. 일말의 희망도 용제에게 주어지지 않는 용락의 그 차가움이 몸서리칠 만큼 싫었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은 부원의 복수심에 있었지만, 이 비극을 비극으로 만든 건 용락의 차가움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용제 위주로 '백발왕비'를 보다보니 이런 원망이 점점 더 커진 것 같다.

 

 


용제의 천명



어머니는 잔인했다. 어머니에게 모성애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모성애가 있었더라면, 복수심에 눈이 멀어 아들을 이용하지도 않았겠지. 부원에게 아들 용제보다 자신이 더 중요했으니까. 어쩌면 갓태어난 아이에게마저 복수심을 느꼈을지도.

어미는 살기 위해 아이에게 자신의 독을, 피를 넘겼다. 그렇게 아이는 유난히 몸이 약한 아이로 성장했고 매달 해독제를 마지시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해독제가 없으면 죽는, 그런 살아도 사는게 아닌 삶을 살아야 했다. 해독제는 오직 어머니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기에 부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지독하게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용제는 자신의 목숨보다 용락을 더 걱정했다. 자신보다 용락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자신의 피와 용락의 피를 바꾸는 선택을 한 것이겠지. 이 모든 것을 부원이 알지 못하게 죽어서도 그는 용락을 지키기 위해 죽지 않고 산 사람처럼 부원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의 마지막 천명을 다해낸다.

 


그 모든 것을 보고 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했다. 설마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용제(라운희)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슬펐다. 중드를 보면서 이렇게 슬픈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눈물이 날 만큼 아팠다. 용제에 내가 너무 몰입했던 걸까 싶기도 했지만 '백발왕비'에서 용제를 제대로 본 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미의 잘못을, 그 죗값을 왜 아들인 용제(라운희)가 갚아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어미는 자신의 잘못을 늬우치지도 못하고 그럴 마음 조차 없는데. 업을 자꾸만 짓고 있는데 아들은 그런 어미를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사죄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 슬픈 일인가. 어미는 한 번도 아들에게 어미의 사랑을 주지 않았다. 제대로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는 언제나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달래준 유일한 친구 용락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마지막까지 이럴수밖에 없는 용제(라운희)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온다.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고, 그 감정을 모두 잊고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그 삶에 행복함을 느낄 때,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마음이 어땠을까.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용락을 볼 때마다 그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문드러졌을 텐데. 용제는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죽어도 이렇게는 용제를 보낼 수 없어서 ㅠ_ㅠ 나는 눈물바다가 되었다지.

 


이렇게는 보낼 수 없어



용제(라운희) 만큼이나 '백발왕비'에서 '이렇게는 보낼 수 없어'라고 외치게 만드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부주(경초)다. 해피엔딩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이런 죽음을 바란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 싶어서 내 눈을 의심했던 순간.

'백발왕비'을 보기 시작할 때, 결말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걸 내가 직접 보고 나니 '나는 이것을 보기 위해 '백발왕비'을 놓지 않고 챙겨 봤던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그래도 용제와 부주를 원없이 앓았으니 본 보람은 있지 싶기도 하지만.

부주(경초)의 마음을 응원한 순간도 있었다. 아니, 용제의 사정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주보다 부주를 응원했다. 용락이 부주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왜곡하지 않기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두 사람이 어긋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부주가 행복해지길 희망했다. 한번도 그의 사랑을 의심한 적이 없었기에.

 


그런데, 몇번이고 부주의 마음이 오롯이 용락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때. 그때마다 용락이 부주를 밀어내고 밀어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부주와 용제가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용락을 몰라도 너무 몰라. 용락의 성격을, 그의 사랑을 제대로 바라봤더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아쉬움도 계속 들었다. 진짜 바보들이야.

흔향의 사랑도 안쓰럽긴 마찬가지. 부주(경초)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신과 용락을 착각해 자신을 안은 것을 알면서도 부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그의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한 흔향을 보면서, 아 이 여자도 보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흔향과 용락의 관계를 알게되었을 때, 이 역시 힘든 삶을 살아왔으리라는 것을 잘 알것 같아서. 또 맴찢이 되어버렸지. 부주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만큼, 흔향도 행복하길 희망했기에. 그러려면 둘이 잘 되어야 하는데 싶어서 꽤 열심히 흔향과 부주의 사랑을,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고대했는데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쩌냔 말이지요!!!!!

 


출생의 비밀



사람 미워하지 말아라. 진짜 그래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자신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백발왕비'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원한은 대를 이어 계속된다는 것도.

진짜 모든 원흉은 '부원'이야. 부원은 존재 자체가 민폐야. 존재하면 안되는 인물이야. 뭐, 또 부원 입장에서 '백발왕비'를 보면 그 모든 행동이 다 이해되고, 또 그만큼 부원이 짠내나는 캐릭터로 등극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부원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다른 이들의 슬픔을 나는 이미 더 많이 받아들였으니까.

부주는 부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는 부원을 자신의 어머니로 여겼다. 그래서 그의 말을 따랐고 그의 복수에 동참했다. 하지만 부원은 부주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부주의 가족은 부원이 아닌 무우였다. 둘은 쌍둥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진짜, 부원이 싫은 이유는 이렇게 가족 간의 다툼을 조장하고, 그 정을 이용한다는 데 있다. 진짜 악질이야.

부원은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를 서계로 보냈다. 원치 않은 아이였으니까. 그 아이가 바로 서계의 황제가 된 용제였다. 운귀비가 낳은 쌍둥이 중 한 명을 데리고 와 자신의 아이로 키웠고, 그 아이에게 자신의 복수심을 되물림시켰다. 결국 부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복수심을 배웠고, 자신의 아버지와 쌍둥이 동생을 죽이려 했던 것. 진짜 무서운 계획 아닌가.

생각할수록 열받는데. 진짜 가족은 건드리지 말자. 부원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이런데 있는데. 아 그보다 나는 '백발왕비' 작가님을 용서할 수 없다. 진짜 악질이야(?). 아 이렇게 다 죽여버리면 이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주냔 말이지요. 그래도 '백발왕비'를 통해 용제와 부주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고, 나는 행복했으니까. 그걸로 된건가 싶기도 하고. 하, 진짜 애증의 드라마라는게 '백발왕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 용제 다시 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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